공지사항

2016. 3. 21. 00:44

"당신은 우연을 믿습니까?


"그럼요"

"물론이죠"

누군가 우연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에서 했던 대답처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믿는다고 대답한다. 정답이 단 하나인 것 처럼. 그래서 인지 이런 질문은 유치하기 그지없고 대답 또한 유치하게 느껴진다.

우연이라...

난 우연을 믿지 않는다.

단지 우연을 가장한 철저한 계획만을 믿을 뿐이다.

- 17시 50분

"지금쯤이면..."

민우는 자신의 계획대로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지금쯤이면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성당에선 고등부들이 성가 대회를 위한 연습을 마치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민우가 실천에 옮기려는 계획은 그들이 성당에서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 성장 앞을 지나가다 그들과 우연히 만나는 척 하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영!'

단 하나의 목적이란건 바라 은영이라는 소녀를 만나는 것으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애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면 되는 것이었다. 은영이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가 조금은 작은 편으로 짧게 자른 단발 머리를 한 인문계에 다니는 고2짜리 소녀였다. 작은 키와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한 없이 귀여운 것이 그 애의 매력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매력 포인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웃을 때 양 옆으로 살짝 보이는 두개의 덧니였고 그 덧니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민우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애의 매력에 빠져 버렸고,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애의 얼굴을 볼 모양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대로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여 이렇게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모든 걸 우연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은영을 처음 본 것은 '친구따라 강남간다'라는 말처럼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성당을 다니는 재현이를 따라 '여름 신앙 캠프'라고 하는 수련회 같은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면서였다. 난 참가 신청과 동시에 캠프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될 조를 배정 받았는데 그 배정 받은 조에는 지금 나의 작은 천사가 되어 버린 은영이가 있었다. 난 은영이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은영이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은영이가 지닌 매력에 빠져 버렸다. 예전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았던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시에틀에 잠 못 이루는 밤'에서도 마법 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았던가? 난 그 마법에 걸린 것이다. 18살의 작은 사랑이 담긴 마법에...


- 18시 15분


"짜증나는군..."


민우는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그러나 성당의 입구가 확실하게 보이는 그런 골목에 위치하고는 시계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15분이나 지났건만 성당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노래 소리가 안들리는 걸로 봐서는 끝난 것 같기도 한데..."


민우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분을 가르키는 바늘이 16분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설마 재현이 이자식이 쫄면을 얻어 먹기 위해 거짓 정보를...'


재현이에게 쫄면까지 사줘가며 알아낸 정보는 4시부터 6시까지 성가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16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오늘은 쉬는 날인가...?"


'혹시'라는 생각에 이렇게 중얼거려 봤지만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 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다시 성당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은영이의 얼굴을 보는데 너무 쉽게 보는 것도 재미와 감동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민우는 옛 선인들의 말씀을 중얼거리며 그 분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내가 은영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날은 정확하게 열흘이었다. 캠프 기간은 2박 3일이었지만 캠프 가기 전 캠프 준비를 하기 위한 예비 모임이 일주일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비 모임 기간은 저녁 시간을 잠시 이용하는 것이었다. 허나 예비 모임은 말 그래도 예비 모임이어서 학원과 같은 바쁜 일로 빠지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지만 난 지각조차 하지 않으며 100%의 출석률을 자랑했다. 빠지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나간 성당이어서 우리 조 선생님은 혹시 내가 적응을 하지 못할까봐 걱정까지 하신 모양인데 내가 열심히 다니니 나중에는 칭잔까지 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다니 건 순전히 은영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은영이는 보기와는 달리 적극적이며 활발한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같은 또래인 내가 처음 대하는 성당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면 옆으로 다가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물론 이것이 은영이게는 별다른 일이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뒤로 나의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격언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열 여덟인 나의 야망은 바로 은영이가 사귀는 것이었다.


- 18시 30분 -


또 다시 15분이 흘렀것만 성당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민우의 표정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다.


"황금과 같은 일요일 저녁을 이렇게 보내다니..."


순간 민우는 머리 속에서 이 시간에 방영하고 있는 수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스쳐 지나갓다. 마침내 이런 생각들은 참고 있던 민우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들었고 결국 일요일 저녁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거리의 돌멩잉를 걷어차고야 말았다.


"탁..."


돌멩이는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더니 반대편 벽에 부딪히며 튕겨져 나갔다.


"한심하군..."


민우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시계 바늘은 주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잘도 흘러가고 있었다.


'성당으로 들어가 볼까?'


마음 같아서는 정말 성당에 들어가서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들어 갈 수 없었다. '어쩐일이야?'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캠프가 끝난 지금 내가 성당에 나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중, 고등부 미사가 있다는 토요일도 아닌 일요일에... 민우는 다시 한번 성당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성당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결국 민우는 이쯤해서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멋부려 나왔는데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 님우는 자신에게 부족한 예술적 감각을 기르는데 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자 민우는 곧 바로 행동을 옮겼다. 마음먹은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민우의 가장 큰 장점인 것이었다. 민우는 자신의 기대를 철저하게 부셔버린 성당을 뒤로하고 예술적 감각이 밀집한 만화방으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약속은 약속을 어기기에 세우고, 계획은 계획대로 안되기에 세운다"


민우는 자신의 계확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 이렇게 위로하기 시작했다.


[캠프 첫날]


우린 일주일 동안 분비한 조 이름과 조가, 조 구호를 몸에 익힌 채로 버스에 올라탔다. 들리는 말로는 매년 시외로 나갔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IMF의 영향으로 시내에 있는 수련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관광버스가 아닌 시내 버스를 타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관광 버스와 시내 버스의 차이는 마음껏 떠들 수 없다는 것 뿐, 흔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 조 이름은 '귀를 기울이면' 이었다. 조 선생님의 말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이라는데, 아무튼 귀를 기울여서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사랑의 속삼임도 있고, 고통으로 흐느껴 우는 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들을 모두 들어야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나 어쨌다나... 난 '꿈보다 해몽이 좋다'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어쨌거나 좋은 얘기인건 변함이 없었다. 우리 조의 조가는 한창 인기 있는 쿨의 '변명'을 계사해서 불렀고, 조 구호는... (차마 유치해서 내입으로 말할 수가...) 아무튼 첫날은 처음 접하는 캠프와 새로 알게된 은영이와 2박 3일을 함께 한다는 기대람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첫날 프고르램은 지루하기 그지 없었다. 오기 전에 재현이로 부터 어느 정도 들은 것도 있었고, 종교 단체니 처음부터 놀자 판으로 갈 수 없을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것 같았다. 난 하루종일 밀려오는 잠의 요정들과 육박전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마지막 프로그램이 인상 깊어 싸움으로 지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여덟명인 한 조를 반으로 나누어 네 명씩 야간 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다는 것이었다. 산행이라는 말에 고생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순전히 귀신 놀이었다. 쉽게 말하면 담력 테스트 같은 것으로 지도를 보고 자신의 조가 가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갑자기 귀신도 튀어나오고 무덤에서 귀신 울음소리도 들리고 뭐 대충 웃지 못할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여자 애들에게는 효과 만점이었다. 난 이 프로그램엥서도 은영이와 한 조가 되었다. 은영이는 활발한 성격이어서 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겁이 엄청 많은 아이였다. 산길을 걷는 동안 사시나무 떨 듯 무서움에 떨고 있는 은영이는 숨어있떤 나의 기사도 정신을 자극시켰고 재미까지 안겨주었다. 특히 '공포의 상자'라는 코너에서 상자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느낌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은영이가 손을 넣는 순간 울음까지 터뜨리며 나의 품에 안길 때는... 풍부한 어휘를 자랑하는 한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욱 재미났던 것은 그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쨋거나 1시간이란 시간이 금방 흘어가 버렸다. 왜 재미난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지... 난 그날 따라 시간이란 놈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 없었다.


- 20시 08분


"역시 만화는 이렇게 웃겨야 한다니까"


민우는 다 읽은 만화책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어다 보았다.


"이런?"


민우는 시계를 보고는 약간 몰라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1시간 30분 정도가 흘러가 버린 것이다. 테이블에는 그 동안 보았던 만화책이 12권이나 쌓여 있었다.


"역시 재미난 순간은 금방이야..."


민우는 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투덜거리며 만화책을 챙기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가봐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꼬를륵' 거리는 배가 민우를 가만두지 않았기에...


[캠프 둘째 날]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제의 지루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둘째 날 프로그램은 힘은 좀 들었지만 정말로 재미난 프로그램들이었다. 이때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느지 모를 정도였다. 조별끼리 예비 모임 기간에 연습한 장기 자랑도 하고, 추적 놀이라는 이상한 프로그램도 했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매년 하는 일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런 일들은 새로은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항상 조별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조별이라 함은 은영이와 함께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로고 밤이 깊어지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캠프 파이어 시간이 돌아왔다. 캠프파이어에서 날 기다린 건 D-TIME 과 포크 댄스였다. 특히 포크댄스는... (흑흑흑... 얘기를 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릴것 같다) 그냥 환상적이었다고 만 알아주길... 그리고 우리들이 둘러싸고 있었던 운동장 가운데의 붉게 타오르는 불꽃은 꼭 은영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말하는 것 같은...


- 20시 15분 -


민우는 서태지의 음악을 머리 속에 그리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성당을 돌아가는 골목을 택할까 했지만 너무 속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길을 선택해 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은영이는 보지도 못할 것이므로 크길로 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사내 대장부라면 큰길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또한 큰길로 가다보면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왠 떼거지?"


순간 민우는 위쪽에서 자기 또래의 남자와 여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흥! 팔자 좋군"


민우는 짜증이 나는 듯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남자와 여자들이 떼지어 다니는 것이 오늘 여자 얼굴 한번 보겠다고 시간을 허비한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극한 것이었다. '도둑이 재발 저린다'고 할까... 민우는 그들과 가까워지자 고개를 숙였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더욱 짜증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민우는 고개를 숙인 채로 그 무리들과 지나치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민우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 너... 민우 아니니?"


민우는 그 목소기릐 주인공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기다리던 은영이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캠프 마지막날]


마지막날의 하이라이트는 물놀이였다. 우리가 간 수련장에는 풀이 없었기에 다른 곳의 자그마한 풀장을 빌리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그 장소로 이동했다. 난 수용을 꽤 하는 편이라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은영이에게 폼 좀 잡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물놀이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나의 수영 솜씨를 애들이 봐주는 것도 괜찮았고,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선생님들을 붙잡아서 물 속으로 집어던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끝까지 버티는 선생님들과 숨막히는 추격전까지... 그 추격전에서는 여자 화장실에 숨어 마지막 배수진을 치고 있던 여 선생님을 화장실 안까지 들아가서 붙잡아 오기도 했다. 이렇게 애들과 어울이는 바람에 은영이와는 물놀이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종교 단체였기에 마지막 프로그램은 성당에서의 미사였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이 마지막 말씀으로 신앙 캠프의 끝을 알리셨다.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 난 조금의 시간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밤이 늦었다며 선생님들이 우리들을 일찍 집으로 돌려 보내셨다. 결국 난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은영이와 헤어진 것이다. '다음에 또 보자'라는 인사만을 나눈 채...


- 20시 20분 -


"어디 갔다 오는 길이니?"


은영이가 민우에게 다가오면 다시 말을 걸었다. 민우는 그저 멍하니 은영이을 바라볼 뿐이었다. 알고보니 떼지어 내려오던 무리들은 바로 성당 고등부들이었다. 성당 애들은 모두 살며시 손을 들어 민우에게 인사를 보냈다. 민우도 그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은영이를 바라보았다. 기르고 마음을 지정시키며 은영이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었다.


"응 친구 집에... 그러는 넌?"


민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은영이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어 보기까지 했다.


"난 요즘 성당에서 대회 준비하거든, 원래는 더 빨리 마치는데 오늘은 행상 준비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아 그랬구나..."


"뭐가?"


"아... 아무것도 아냐"


재현이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단지 오늘은 좀더 시간이 길어진 것 뿐이었다.


"참 너 이번주 토요일날 성당 나올 거지?"


은영이는 민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게..."


"이번 기회에 종교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거야. 혼자오기 쑥스러우면 재현이 보고 함께 가자로 하면 되잖아"


"그... 그래..."


민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약속하는 거다"


"알았어"


"말로만? 자 새끼 손가락 줘"


은영이는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민우도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 은영이의 새끼 손가락에 걸고는 엄지 속가락을 이용해 도장까지 찍었다.


"꼭 지켜 !"


"응"


"참 이건 너 주려고 가지고 있던 건데..."


은영이는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찾았는지 손을 내밀며 민우의 가슴 앞에서 펼쳤다.


"종이학?"


그건 껌 종이로 만든 학이었다. 주머니에 있었기에 날개 부분이 조금 꾸깃해 졌지만, 접혀 있었던 상태였기에 그리 망가지지는 않았었다.


"난 네가 해부학에 관심이 있었으면 해... 그럼 다음주에 보자"


은영이는 이 말만 남긴채 돌았섰다. 그리고 성당 친구들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성당 애들 중에는 이제 보니 재현이도 끼여 있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재현이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민우를 향해 소리치고는 손까지 흔들어댔다.


"그래"


민우도 엉겁결에 손을 흔들며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민우는 은영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 바라만 보았다.


"해부학이라... 무슨 뜻이지?"


민우는 은영이가 사라진 후 은영이의 마지막 한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래도 해부학에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이 무언가를 뜻하는 것 같았다. 민우는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종이학으로 시선을 옮겼다. 종이학을 주고 난 후에 한 말이니 조이학과 관련이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종이학을 쳘쳐보란 얘긴가?"


민우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종이학을 펼쳐 보았다. 그러자 안쪽 면에서 검은색의 글시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가가 적혀 있다'


민우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머지 부분을 다 펼쳤다. 그 안에는 은영이의 삐삐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짧은 한 줄의 글도...


"널 안게 되어 기뻐"


민우는 그 안에 적힌 글을 나지막이 읽었다. 그리고는 그 종이를 꼭 쥐고서 집까지 뛰어가기 시작햇다. 비록 몸은 뛰어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기쁨에 겨워 날아가고 있었다.


-20시 30분-


민우가 집에 도착하자 거실에 있는 시계 바늘이 2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은영이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민의 머리속은 이 한가지 사실로 가득차 다른 것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어디 갔다 왔느냐는 어머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민우는 곧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고는 길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민우의 심장은 그 어떤 때보다 빨리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민우는 은영이의 삐삐 번호가 떠오르자 옆에 놓여 있던 무선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은영이의 삐삐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신호 음이 들리자 민우는 전화기를 귀에 밀착시켰다. 때마침 은영이의 삐삐 인사말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경음악이나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은영이 자신의 목소리였다.


"아미 지금쯤 넌 이 인사말을 듣고 있겠지? 너에게 종이학을 주고 난 후, 이렇게 인사말까지 바꿨다는 것 아니니. 나중에 네가 좋은 음악 골라줘야 한다. 난 비록 우리가 우연이 만났지만 그 우연을 가장 큰 행복으로 만들고 싶어, 너도 그렇게 해 줄거지. 듣는 즉시 꼭 대답해 주기다. 난 네 목소리가 듣고 싶거든"


"은영이는 정말..."


민우는 은영이의 인사말에 작은 감동까지 받으며 음성 사서함에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우연이라... 세상에 우연이란 건 없어. 우연이란 단지 철저한 계획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일 뿐이야. 우리가 만난건 우연이 아냐. 그건... 하늘이 정해준 운명 같은 거야! 난 우리의 운명을 믿어. 그리고... 나도 너를 마나서 기뻐!"


민우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다시 한번 종이에 적힌 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마리의 종이학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신은 우연을 믿으십니까?"


누군가가 나에게 또 다시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뇨! 전 우연을 믿지 않아요. 우연이란 철저한 계획을 가장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전 우연 대신 다른 걸 믿어요"


"그게 뭐죠?"


"운명"


추신 :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에게... "당신은 우연을 믿으세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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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0) 2015.12.21